청룡사(서울)
📍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망산길 65
소개
청룡사(靑龍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의 말사로,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다. 922년(고려 태조 5)에 도선(道詵) 국사의 유언에 따라 태조 왕건이 어명을 내려 창건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하는 산등에 지었다고 하여 사호를 청룡사라 하였다.1036년(정종 2년)에 만선 비구니스님이 퇴락한 절을 창건 이후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하여 10차의 중창 역사를 갖고 있다. 1923년 다시 옛이름인 청룡사로 불리게 되었고 1950년대에 대대적인 중창이 있었으며 1973년에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창건배경과 역사
청룡사(靑龍寺)는 922년(태조 5) 도선(道詵, 827~898) 국사의 유언에 따라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되는 산등성이에 지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제1대 주지로 비구니 혜원(慧圓) 스님이 주석한 이래 줄곧 비구니 스님만이 주석한 것이 특색이다. 고려에 와서는 1036년(정종 2)에 만선(萬善) 스님이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1158년(의종 12) 회정(懷正) 스님이 두 번째로 중창하였는데, 이때 이 부근에서는 청룡사 동북쪽 고개 너머에 있는 보문사(普門寺) 창건 이후로 43녀 만에 처음 세워진 절이라 하여 "새절 승방"이라고도 불렀다. 1299년(충렬왕 25) 중국 원나라의 침입으로 절이 황폐화되자 지환(知幻)스님이 중창하였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비 혜비(惠妃)가 머물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머물렀으며, 1405년(태종 5) 무학(無學) 대사를 위하여 왕명으로 중창했다. 창건 당시 도선 국사를 위하여 창건한 이래 두 번째로 왕명에 의한 중창인 것이다. 이어서 1512년(중종 7)과 1624년(인조 2)에도 법공(法空)스님과 예순(禮順) 스님이 각각 중창하였다. 1771년(영조 47)에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가 이곳에 있었다 하여 영조가 직접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글을 내려 비석과 비각을 세우게 했는데, 이때 절 이름을 잠시 정업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비석과 비각은 현재도 절에 남아 있다. 1813년(순조 13)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묘담(妙潭)·수인(守仁) 두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1823년(순조 23) 왕명으로 다시 옛 이름인 청룡사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1902년(고종 6) 정기(正基)·창수(昌洙) 스님이 중창하였고, 1918년과 1932년에 상근(詳根) 스님이 중창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1954년~1960년 사이에 윤호(輪浩) 스님이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고 대웅전은 다시 1973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룡사는 왕실의 여인과 관계가 많은 곳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고려 말의 명신 익재 이제현(李齋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이곳에 거주하였으며, 또 조선 초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이곳으로 와 머무는 등 왕실과의 관계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세조에 의해 폐위되고 강원도 영월까지 유배가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된 단종(端宗, 1441~1457)은 유배 갈 때 왕비 정순 왕후와 이곳 우화루(雨花樓)와 영리교(永離橋)에서 마지막 이별을 하고, 이어 왕비는 영월이 있는 동쪽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청룡사에서 스님이 된 비극이 서려있기도 하다.
* 창건배경과 역사
청룡사(靑龍寺)는 922년(태조 5) 도선(道詵, 827~898) 국사의 유언에 따라 왕명으로 창건되었다. 풍수지리적으로 한양의 외청룡(外靑龍)에 해당되는 산등성이에 지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청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제1대 주지로 비구니 혜원(慧圓) 스님이 주석한 이래 줄곧 비구니 스님만이 주석한 것이 특색이다. 고려에 와서는 1036년(정종 2)에 만선(萬善) 스님이 처음으로 중창하였고 1158년(의종 12) 회정(懷正) 스님이 두 번째로 중창하였는데, 이때 이 부근에서는 청룡사 동북쪽 고개 너머에 있는 보문사(普門寺) 창건 이후로 43녀 만에 처음 세워진 절이라 하여 "새절 승방"이라고도 불렀다. 1299년(충렬왕 25) 중국 원나라의 침입으로 절이 황폐화되자 지환(知幻)스님이 중창하였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비 혜비(惠妃)가 머물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머물렀으며, 1405년(태종 5) 무학(無學) 대사를 위하여 왕명으로 중창했다. 창건 당시 도선 국사를 위하여 창건한 이래 두 번째로 왕명에 의한 중창인 것이다. 이어서 1512년(중종 7)과 1624년(인조 2)에도 법공(法空)스님과 예순(禮順) 스님이 각각 중창하였다. 1771년(영조 47)에는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가 이곳에 있었다 하여 영조가 직접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라는 글을 내려 비석과 비각을 세우게 했는데, 이때 절 이름을 잠시 정업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비석과 비각은 현재도 절에 남아 있다. 1813년(순조 13)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묘담(妙潭)·수인(守仁) 두 스님에 의해 중창되었고 1823년(순조 23) 왕명으로 다시 옛 이름인 청룡사로 고쳐 부르게 하였다.
1902년(고종 6) 정기(正基)·창수(昌洙) 스님이 중창하였고, 1918년과 1932년에 상근(詳根) 스님이 중창하였다. 근대에 와서는 1954년~1960년 사이에 윤호(輪浩) 스님이 전체적으로 대대적인 중창을 하였고 대웅전은 다시 1973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룡사는 왕실의 여인과 관계가 많은 곳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고려 말의 명신 익재 이제현(李齋賢)의 딸이자 공민왕비인 혜비(惠妃)가 이곳에 거주하였으며, 또 조선 초 태조의 딸 경순 공주가 이곳으로 와 머무는 등 왕실과의 관계가 많았던 것이다. 특히 세조에 의해 폐위되고 강원도 영월까지 유배가 결국 그곳에서 죽게 된 단종(端宗, 1441~1457)은 유배 갈 때 왕비 정순 왕후와 이곳 우화루(雨花樓)와 영리교(永離橋)에서 마지막 이별을 하고, 이어 왕비는 영월이 있는 동쪽이 가장 잘 보이는 이곳 청룡사에서 스님이 된 비극이 서려있기도 하다.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망산길 65
✏ 상세 정보
화장실
있음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2-763-4031
주차 시설
없음
유모차 대여 여부
불가
신용카드 가능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불가
이용 시간
일출시~일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