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사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소개
* 사명대사의 전설이 밴 사찰, 대법사 *
경남 밀양 일대는 사명대사의 영험한 전설이 구석구석 밴 곳이다.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등 사명대사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이 대법사가 위치한 무안면 일대에 남아 있다. 땀 흘리는 표충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50대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직접 심었다는 설도 있음)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 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 마당에 서 있다. 높이가 2m20cm, 굵기는 3m20cm로 나무 밑동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우람하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900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사명대사가 10여 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 열반 후 그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원래의 이름을 뺏기고 말았다. 초창 당시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해서 백하암(白霞庵)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랜 세월 국가의 관심 속에서 중건을 거듭해 왔으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현 조실 지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사격을 갖게 되었다.
* 대법사에 전해오는 모과나무 설화 *
사명대사의 정신이 깃든 이 대법사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한편이 전해지니 바로 모과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해발 6백 m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법사의 중창불사가 한창이던 더운 여름, 사명대사의 지팡이 나무라고 알려진 모과나무가 대웅전을 지으려는 자리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 모과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나무 옮기는 것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스님은 1주일간 기도까지 드려가며 공사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인부들이 일하러 오기로 한 그날 새벽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요사채에서 잠을 자던 지혜 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적막하기만 한 산중에 갑자기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이내 잠잠해져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
"내가 4백 년을 지켰는데 네 마음대로 하려느냐. 나는 절대 안 간다." 지혜 스님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목소리는 분명 모과나무쪽에서 들려왔다. 후닥닥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8월 한 여름철인데 모과나무에서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토록 기이한 일을 겪게 된 스님은 새벽 6시 공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 옮기는 일을 취소시켰다. 바로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93년 8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현재의 대법사 구조가 참으로 이상하다.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선방이 들어섰고 모과나무는 그대로 놔둔 채 주전 각인 대웅보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수십억 원을 들여 대규모 불사를 하면서 본존불을 모시는 주전이각을 경내 중심에서 뚝 떨어진 곳에다 짓는, 전통사찰 건축양식에서 보면 크게 어긋나는 불사를 한 대법사의 이야기는 사명대사의 원력이 작용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궁색하다. 사명대사의 혼을 잇고 있는 경남 밀양 대법사는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혜 스님에 의해 불자들이 본분을 깨닫게 하는 청정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경남 밀양 일대는 사명대사의 영험한 전설이 구석구석 밴 곳이다.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등 사명대사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이 대법사가 위치한 무안면 일대에 남아 있다. 땀 흘리는 표충비에서 8km 정도 떨어진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50대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직접 심었다는 설도 있음)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 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 마당에 서 있다. 높이가 2m20cm, 굵기는 3m20cm로 나무 밑동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우람하다.
이 사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900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사명대사가 10여 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 열반 후 그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원래의 이름을 뺏기고 말았다. 초창 당시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해서 백하암(白霞庵)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랜 세월 국가의 관심 속에서 중건을 거듭해 왔으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현 조실 지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사격을 갖게 되었다.
* 대법사에 전해오는 모과나무 설화 *
사명대사의 정신이 깃든 이 대법사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한편이 전해지니 바로 모과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해발 6백 m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법사의 중창불사가 한창이던 더운 여름, 사명대사의 지팡이 나무라고 알려진 모과나무가 대웅전을 지으려는 자리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 모과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나무 옮기는 것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스님은 1주일간 기도까지 드려가며 공사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인부들이 일하러 오기로 한 그날 새벽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요사채에서 잠을 자던 지혜 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적막하기만 한 산중에 갑자기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이내 잠잠해져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
"내가 4백 년을 지켰는데 네 마음대로 하려느냐. 나는 절대 안 간다." 지혜 스님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목소리는 분명 모과나무쪽에서 들려왔다. 후닥닥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8월 한 여름철인데 모과나무에서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토록 기이한 일을 겪게 된 스님은 새벽 6시 공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 옮기는 일을 취소시켰다. 바로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93년 8월 10일의 일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현재의 대법사 구조가 참으로 이상하다.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선방이 들어섰고 모과나무는 그대로 놔둔 채 주전 각인 대웅보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수십억 원을 들여 대규모 불사를 하면서 본존불을 모시는 주전이각을 경내 중심에서 뚝 떨어진 곳에다 짓는, 전통사찰 건축양식에서 보면 크게 어긋나는 불사를 한 대법사의 이야기는 사명대사의 원력이 작용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궁색하다. 사명대사의 혼을 잇고 있는 경남 밀양 대법사는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혜 스님에 의해 불자들이 본분을 깨닫게 하는 청정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 위치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 상세 정보
화장실
있음
외국어 안내서비스
불가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55-356-0322
주차 시설
주차 가능
유모차 대여 여부
없음
신용카드 가능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불가
쉬는 날
연중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