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나주)
📍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98
소개
운흥사는 덕룡산 기슭에 있는 고찰이었다. 1775년 정문(鄭文)이 쓴 진여문4중창기(眞如門四重創記)에 의하면 당 희종년간(846∼887)에 도선국사가 이곳의 지세가 좋아 흥덕으로부터 와서 이곳 도성암(道成庵)에서 첫 강회를 열고 터전을 닦은 후 신라 효공왕 년간(897∼911)에 이곳에 웅점(熊岾)에 웅치사(熊峙寺) 창건하였다. 그후 언제인가 운흥사로 바꾸었다. 1775년 당시에는 대웅전 침계루 등 380여칸의 규모를 갖춘 사찰로 확인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현재는 빈약한 사찰이다. 나주 운흥사 석장승은 사찰입구 길가에 있는데 우측이 여장생, 좌측이 남장생으로 되어 있다. 여장생은 하원당 장군(下元唐將軍)이라 음각된 얇고 넓은 돌 장승인데 불회사의 여장생처럼 온화한 맛이 없는 원시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한 인상을 하고 있다.
좌측의 남장생은 거대해서 위엄이 있으나 안면이 온화하고 인자한 노인 특유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또 큰 치아 두 개가 입의 좌우에 노출되어 있고 수염이 턱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불회사 장생과 운흥사 장생이 다른 점은 불회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 남상이고 좌측이 주장군으로 여상인데 반해서 운흥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으로 여상이고 좌측이 주장군(周將軍)으로 남상이 되어 위치와 새긴 글씨가 서로 뒤바꿔져 있다. 그러나 그 조각법과 원형의 눈동자 등 형태가 거의 흡사한데다 여상인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서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한편 여인들이 치성을 드린 흔적인 수혈이 많이 남아 있는 바위가 있어 민간신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좌측의 남장생은 거대해서 위엄이 있으나 안면이 온화하고 인자한 노인 특유의 인상을 지니고 있다. 또 큰 치아 두 개가 입의 좌우에 노출되어 있고 수염이 턱밑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불회사 장생과 운흥사 장생이 다른 점은 불회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 남상이고 좌측이 주장군으로 여상인데 반해서 운흥사는 우측이 하원당장군으로 여상이고 좌측이 주장군(周將軍)으로 남상이 되어 위치와 새긴 글씨가 서로 뒤바꿔져 있다. 그러나 그 조각법과 원형의 눈동자 등 형태가 거의 흡사한데다 여상인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銘文)이 있어서 정확한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민속자료이다. 한편 여인들이 치성을 드린 흔적인 수혈이 많이 남아 있는 바위가 있어 민간신앙의 단면을 볼 수 있다.
🗺 위치
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암정로 398
✏ 상세 정보
화장실
있음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61-337-2621
주차 시설
있음
유모차 대여 여부
불가
신용카드 가능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