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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안성 죽주산성은 중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길과 동서방향으로 서해로 연결되는 길이 서로 만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 삼국시대에 쌓아서 조선시대까지 사용한 산성이다.
죽주산성은 중성(본성), 외성, 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이다. 죽주산성이 가진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여러 시기에 걸쳐 고쳐서 쌓으면서 만들어진 구조이다. 죽주산성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중성은 그 높이가 6~10m에 달하며, 성벽 바깥으로 도랑을 파서 방어력을 높였다. 한강유역으로 북진한 신라가 6세기 후반 이후에 죽주산성을 쌓았고, 이후 몇 차례 고쳐 쌓았다. 이와 같이 여러 시기에 걸쳐 다시 쌓은 것은 죽주산성이 품은 시간의 켜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성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는데, 신라 산성의 북벽에 새로 성벽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 고려 고종 23년(1236)에는
죽주방호별감인 송문주(宋文冑) 장군이 죽주산성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반영하듯이 산성 내에는 송문주 장군의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기간인 조선 선조 26년(1593)에는 황희 정승의 5대손인 충청병마절도사 황진(黄進)이 죽주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중성 내부의 높은 지점에는 내성을 쌓아 최종적으로 3중성이 되었다. 이러한 중복된 산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성벽을 쌓은 방식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설치되었고, 남벽의 양 끝에는 각각 1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돌로 하단부를 60도 정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쌓은 왜성의 축조기법을 적용한 결과이다. 또한 중성에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군사 시설인 포루가 설치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 죽산산성 내부의 계곡에는 6기 이상의 신라 집수시설이 배치되어 있음이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산성이 반드시 갖추어야하는 물자원과 관련된 전통 토목기술과 조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원형을 참고하여 집수시설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 위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 상세 정보

입 장 료

무료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31-678-2502
주차 시설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이용 시간
상시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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