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서사(봉화)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소개
축서사(鷲棲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本寺)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末寺)이다. 문수산(文殊山) 기슭, 해발 800m 고지의 명당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다. 독수리 축(鷲), 깃들 서(棲), 즉 독수리가 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님을 뜻한다. 또 다른 가설로 험준한 뒤쪽 산세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독수리의 형국이므로 축서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축서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연기설화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이 어느 날 밤 지금의 개단초등학교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어 광체가 나는 곳으로 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고 한다. 훗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현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이 절은 서기 1875년에만 해도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선승당, 동별당, 서별당, 청련당, 백화당, 범종각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고, 산내 암자만도 상대, 도솔암, 천수암 등 세 개나 되었다. 대웅전 본존불에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하여 기도처로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였으나, 조선 말기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으로 왜구의 속국화되는 것을 분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무장봉기하여 항일투쟁할 때 이곳에도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 방화하여 대웅전 1동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축서사에는 보물 제995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보물 제1379호 괘불탱,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157호 축서사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158호 축서사석등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축서사는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서기 673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연기설화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스님이 어느 날 밤 지금의 개단초등학교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어 광체가 나는 곳으로 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고 한다. 훗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다니다가 현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이 절은 서기 1875년에만 해도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선승당, 동별당, 서별당, 청련당, 백화당, 범종각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고, 산내 암자만도 상대, 도솔암, 천수암 등 세 개나 되었다. 대웅전 본존불에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하여 기도처로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였으나, 조선 말기 을사조약과 정미7조약으로 왜구의 속국화되는 것을 분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무장봉기하여 항일투쟁할 때 이곳에도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 방화하여 대웅전 1동만 남기고 전소시켰다.
축서사에는 보물 제995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 보물 제1379호 괘불탱,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157호 축서사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제158호 축서사석등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 위치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월계길 739
✏ 상세 정보
입 장 료
무료
화장실
있음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54-672-7579
주차 시설
가능
쉬는 날
연중무휴
이용 시간
09:00~18:00
체험 안내
템플스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