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이충무공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
소개
충무공이 노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최후를 마친 것이 선조 32년(1598) 10월 18일이었는데 그의 조카인 완이 충무공의 유언에 따라 공의 운명을 숨기고 대신 진두지휘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적이 패퇴한 뒤에 공의 서거를 발표하였다. 그 해에 고향인 아산으로 운상하여 선영이 있는 곳에 안장한 것은 선조33년(1599년) 2월이었다. 무공의 본관은 덕수이며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무과에 합격하여 여러곳의 군관 및 지방 수령을 거쳐 임란직전 전라좌수사로 있었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조련시키면서 거북선을 만들었다. 임란이 일어나자 육상에서는 북상하는 왜적을 물리치지 못했지만 해상의 경우 충무공의 힘이 미치는 남해에서는 왜적이 얼씬거리지 못했다 한다.
정부에서는 남도의 수군지휘권을 공의 휘하에 두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새로이 통제관을 설치하여 통제사에 취임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략으로 인하여 직위가 삭탈됨과 동시에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으로 공 대신 통제사가 된 원균이 왜적에게 대패하면서 전사하자, 공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와 선박을 이끌고 진도 벽파진에서 적의 대군을 대파시키고 다시 고금도로 진을 옮겨서 탈출하려는 소서행장의 선단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나, 왜적은 큰 타격을 입고 도망갔던 것이다. 공의 전적을 기리는 많은 비각이 있으며 봉사하는 곳으로 순천의 충민사, 해남의 충무사, 남해와 통영의 충열사, 아산의 현충사 등이 있다.
정부에서는 남도의 수군지휘권을 공의 휘하에 두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새로이 통제관을 설치하여 통제사에 취임하게 하였다. 그러나 모략으로 인하여 직위가 삭탈됨과 동시에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정유재란으로 공 대신 통제사가 된 원균이 왜적에게 대패하면서 전사하자, 공은 얼마 남지 않은 군사와 선박을 이끌고 진도 벽파진에서 적의 대군을 대파시키고 다시 고금도로 진을 옮겨서 탈출하려는 소서행장의 선단을 맞이하여 싸우다가 전사하였으나, 왜적은 큰 타격을 입고 도망갔던 것이다. 공의 전적을 기리는 많은 비각이 있으며 봉사하는 곳으로 순천의 충민사, 해남의 충무사, 남해와 통영의 충열사, 아산의 현충사 등이 있다.
홈페이지
🗺 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41-536-8773
유모차 대여 여부
없음
신용카드 가능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