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
📍 강원도 동해시 공단4로
소개
동해 시청에서 동쪽으로 1km쯤 떨어진 동해안에 있는 만경대는 조선 광해군 5년(1613년) 김훈이 만들어 세운 것으로, 그동안 풍파로 폐허가 된 것을 60년 전에 삼척 김 씨들이 다시 세웠다. 정자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망망대해가 파도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구미 후산 53번지 성산봉에 우뚝 선 만경대는 조선조 광해군 때 삼척 김 씨 김훈이 창건한 정자이다.
공의 자는 원충(元忠), 호는 신당 (新堂)이며, 官은 통훈대부사복사첨정(通訓大夫司僕寺僉正)이고, 실직군왕위옹(悉直郡王渭翁)의 17세손이다. 부군인 오산량필공(梧山良弼公)은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 때 공을 세운 사람이다. 신당 공 훈은 성품이 영매하여 청렴하고 곧은 지조로 관리로 일하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향리에 돌아와 동 회리(신당촌)에 살면서 만경대를 창건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동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뒷뜰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헌종 1년) 부사 허목은 이곳을 관상하여 만경이라 하였고, 1796년(정조 20년)부사 유한전은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다. 1872년(고종9년) 정자를 중건하였는데, 해석 이돈상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고, 공판 김원식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한성부윤 이남식은 "해상명구(海上名區)" 현판을 걸었다. 1924년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니, 명유 홍정현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당 대명필 옥람 한일동은 정자 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다. 이 만경대는 현재삼척 김씨 부사공파 송정종중 후손들이 관리, 보존하고 있다.
동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뒤뜰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헌종 1년) 부사 허목은 이곳을 관상하여 만경이라 하였고, 1796년(정조 20년)부 사 유한전은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다. 1872년(고종9년) 정자를 중건하였는데, 해석 이돈상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고, 공판 김원식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한성부윤 이남식은 "해상 명구(海上名區)" 현판을 걸었다. 1924년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니, 명유 홍정현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당 대명필 옥람 한일동은 정자 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다. 이 만경대는 현재 삼척 김 씨 부사공파 송정 종중 후손들이 관리, 보존하고 있다.
공의 자는 원충(元忠), 호는 신당 (新堂)이며, 官은 통훈대부사복사첨정(通訓大夫司僕寺僉正)이고, 실직군왕위옹(悉直郡王渭翁)의 17세손이다. 부군인 오산량필공(梧山良弼公)은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 때 공을 세운 사람이다. 신당 공 훈은 성품이 영매하여 청렴하고 곧은 지조로 관리로 일하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향리에 돌아와 동 회리(신당촌)에 살면서 만경대를 창건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동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뒷뜰과 함께 눈 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헌종 1년) 부사 허목은 이곳을 관상하여 만경이라 하였고, 1796년(정조 20년)부사 유한전은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다. 1872년(고종9년) 정자를 중건하였는데, 해석 이돈상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고, 공판 김원식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한성부윤 이남식은 "해상명구(海上名區)" 현판을 걸었다. 1924년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니, 명유 홍정현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당 대명필 옥람 한일동은 정자 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다. 이 만경대는 현재삼척 김씨 부사공파 송정종중 후손들이 관리, 보존하고 있다.
동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뒤뜰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헌종 1년) 부사 허목은 이곳을 관상하여 만경이라 하였고, 1796년(정조 20년)부 사 유한전은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다. 1872년(고종9년) 정자를 중건하였는데, 해석 이돈상은 정자 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고, 공판 김원식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한성부윤 이남식은 "해상 명구(海上名區)" 현판을 걸었다. 1924년에 다시 정자를 중건하니, 명유 홍정현은 상량문을 지었으며 당 대명필 옥람 한일동은 정자 전면에 만경대 액판을 걸었다. 이 만경대는 현재 삼척 김 씨 부사공파 송정 종중 후손들이 관리, 보존하고 있다.
🗺 위치
강원도 동해시 공단4로
🔎 이용 안내
문의 및 안내
033-244-0088
유모차 대여 여부
없음
신용카드 가능 여부
없음
애완동물 가능 여부
없음